
시카고에서 나이아가라로 오는 것 자체가 나에겐 꽤 도전이었다. 그런 만큼 여기 와서는 부지런히 다니면서 꼼꼼히 다 둘러보고, 야경도 감상하고 그렇게 재미있게 놀아야지 하는 각오가 애초에는 -_- 있었다. 그러나 폭풍 속의(...) 숙녀호에서 물벼락을 맞은 다음에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빨리 캐나다만 찍고 일찍 돌아가자 하는 마음 뿐이었다.
미국 쪽 나이아가라 폴스 공원에서 오른쪽으로 가다 보면 파킹 랏이 있고, 그 옆 샛길로 가다 보면 레인보우 브릿지로 갈 수 있는 길이 이렇게 나온다. 따로 출국심사 같은 건 없다.

레인보우 브릿지. 차가 밀리는 이유는 차가 많아서가 아니고 앞 지점에서 입국심사를 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레인보우 브릿지에서 내려다 본 폭포


웰컴 투 캐나다!
저 게이트로 들어가면 캐나다 쪽 입국심사대가 있다. 왜 왔는지, 며칠 머물 건지, 미국 말고 본국인 한국에는 언제 귀국할 건지도 물어본다. 그 후 여권에 도장 콕.

입국하자마자 보이는 쉐라톤 호텔 나이아가라 폴스뷰와 카지노 건물 그리고 멋진 정원. 이것도 나름 출국이라고 다리 근처에 듀티프리라고 적힌 면세점도 있는데, 공사 중이었다.

건너왔던 레인보우 브릿지. 5분 정도 걸렸나? 그리 길지 않았다



캐나다 쪽 큰 장점이 이 폭포를 정면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분 캐나다 쪽 폴스 뷰를 미국보다 더 높게 친다.

캐나다 쪽 선박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이렇게 2층 구성이 되어 있고, 화장실, 카페와 식당, 기프트샵 같은 가게도 여럿 있었다.


역시 단풍국이야. 단풍단풍해 -_-; 미국 쪽보다 훨씬 이쁜 아이템들이 많았다. 마그넷을 하나 샀는데, 난 당연히 미국 달러는 여기서 못 쓸 줄 알고 카드로 긁었건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주변 지역 상점들은 굳이 캐나다 달러로 환전할 필요 없이 두 국가의 돈을 모두 받고 있었다.
미국 1달러가 우리 돈으로 약 1,130원이면 캐나다 1달러는 약 850원 정도. 고로 여기 돈 10불 짜리 물건을 사도 미국 달러로는 7.5불 정도 밖에 안 쓴 셈인거다. 돈 받을 땐 거의 1.2배 정도로 계산해주는 듯 했다.

폴스뷰를 충분히 감상했으니 이 쪽 시내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맞은편 길을 따라 그냥 쭉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오락실 규모가 꽤 컸다. 작정하면 3시간 이상 놀 수 있을 정도.

진짜 동전을 넣는 곳은 처음 봤다;;


귀여운 옷가게와 스타벅스 등 카페, 간식거리, 기프트샵, 오락실, 조금은 무시무시한 버거킹 그리고 이 주변엔 유독 귀신의 집?이 많았다. 이 쪽 사람들 데이트 코스는 이런 건가? 싶었다 ㅋㅋㅋ


재미있는 간판, 특이한 건물들과 영화관도 있고.

펍!!!! 드디어 원하던 걸 찾았다. 참고로 이 때가 오후 두시 반이었다 -_-

왠지 가게에 들어가고 싶은지 문 앞에서 두리번거리던 캐나다 개님. 개줍하고 싶었지만 우리 집에도 이미 상전이 한 분 계셔서...


Kelseys. 펍이 꽤 크고 마찬가지로 바 주변에 모니터 여러 개가 있어 야구를 시청하면서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코로나 한 병에 6.75불인데, 카드로 계산하겠다고 했더니 카드 계산기를 직접 나에게 주는 거다. 당황해서 내가 직접 결제하냐고 했더니 맞다고 하더라. 기계를 보니 맥주 가격은 이미 입력되어 있었고, Tips??라고 뜨는게 팁을 기계에 직접 입력하라는 뜻이었다. 친절하게도 메뉴에 %로 주기, 직접 입력한 만큼 주기 등 선택지가 많았다. 직원이 나에게 그닥 친절하진 않았기 때문에 그냥 10% 정도를 더한 7.45불을 입력해서 드렸다. 팁을 줘도 홍대 같은 서울 시내 펍에서 먹은 것보다 싸게 친다.


잔디밭에 누워 자는 가족들

평화로이 프리스비를 던지는 아이들
나도 누워서 하늘 구경을 하며 "아무 것도 안 해도 됨"의 즐거움을 잠시 누렸다
이 날이 정확히 출국 7일 차였다. 문득 다 좋은데, 국물 요리가 너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치찌개, 라면, 소고기 국밥, 감자탕 뭐 이런거... 미국은 정말 수프를 제외하면 국물 요리가 일절 없다. 내가 일주일 동안 먹은 것 중에 국물이라고는 마담주주스 근처의 -_-;;;;; 거대한 고기우동과 퍼비언네 회사 근처 쌀국수가 전부였다. 라면! 그래 난 라면을 좀 먹을 때가 됐어... 오늘 저녁엔 좀 매운 국물을 먹어보자 싶어 잔디밭에 누운 채 Yelp로 주변 한식당을 열심히 검색했다.
식당 1. 영업하다 망해서 없어짐
식당 2. 걸어서 40분 거리 -_-;;;;;
식당 3. 한식당은 맞는데... 한국인들 평이 아주 최악
식당 4. 거리도 괜찮고 한인들 평도 그럭저럭 괜찮은데, 가격이 미쳐버림. 돈까스 19불, 부대찌개 33불 -_-;;;;;;;;;; 아니 부대찌개에 금가루를 뿌렸나?
그냥 포기할까 하다가 아 그래 뭐.. 아직도 여행이 4일이나 남았고 진짜 먹고 싶은건 먹어야지 뭐 어쩌겠나 싶어서 다시 일어나서 걸었다. 식당은 미국 폴스 공원 근처에 있기에 다시 캐나다를 빠져나와야 한다. 캐나다에서도 마찬가지로 출국 심사 같은 건 안 하는데, 대신 게이트를 통과하기 전에 통행료? 인지 50센트를 지불해야 한다. 미국 돈과 캐나다 돈을 동일하게 받으며, 한쪽 벽면에 동전 교환기가 있었지만 난 동전이 충분히 많았기에 쿼터 두 개를 넣고 통과.
미국 쪽 입국심사도 별 다를 건 없었다. 다만 나보고 캐나다에서 뭘 샀는지 물어보길래, 마그넷 몇 개를 샀다고 대답했더니 갖고 있는 가방 속을 다 보여달라고 했다. 별 망설임 없이 갖고 있던 가방을 열어서 보여줬더니 귀찮은지 자세히 보지도 않고 패스.
식당 4까지 20분 가량을 더 걸었다. 멀리서 Korean Restaurant라는 간판이 보이길래 따끈한 쌀밥에 찌개를 먹을 생각에 신이 났다. 근데 식당 바로 맞은 편에 7 Eleven 편의점이 크게 있는 것 아니겠는가? 어 혹시...?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더니

푸라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HIN BOWL (GOURMET SPICY)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갑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설레는 맘을 진정시키며 캐셔에게 물어봤다. 나 여기서 이거 먹고 가도 되냐고. 나같은 한인들이 많았는지 시크하게 그래 하더니 이걸 뜯어서 뭘 넣은 다음에 저기 뜨거운 물 받아서 먹으면 된다고 나에게 컵라면 만들어먹는 법을 상세히 설명해주는 것 아닌가. -_-;;;;; 흑형에게 컵라면 제조법을 가르침받은 나란 코리안. 하하하 난 계산하자마자 비닐을 뜯었고 소스를 뿌린 뒤에 물을 받았다. 왠지 스프 색깔이 안 빨갛고 슈에무라 m44마냥 청순한 오렌지 빛을 띠고 있길래 아... 분명 안 맵겠구나 싶어 물도 80% 정도만 부었다. 그리고 한 번 면을 뒤집어줄 생각으로 젓가락을 꺼내는데...

아차_여기_미국이지.jpg
캐셔가 단호히 말했다. 노 찹스틱 인 히어 -_- 너무 허탈해서 대놓고 웃어버렸다. 셀프 바에 정말 온갖 종류의 설탕, 시럽, 케첩, 머스타드 소스, 숟가락과 포크, 사이즈 종류별로 구비된 빨대, 컵 등 이것저것 무료로 제공되는 게 엄청 많은데 하필 젓가락은 없다. 별 수 있나. 이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포크로 라면을 먹었다. 맛있었다. 정말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5분만에 클리어했다. 내가 너무 열심히 먹으니까 가게 손님들 몇몇은 신기하게 날 쳐다봤는데, 그런 것도 전혀 신경 안 쓰고 먹어버렸다.
이제 배도 채웠으니 집으로 돌아가자 -_-
시카고로 돌아가는 기차 시각은 23:59였지만 버스 대기, 이동, 걷는 시간이 합쳐서 3시간 정도 걸리는 데다가 워낙 외지고 사람이 없는 곳이라서 해가 진 후에 돌아다니면 분명 위험할 것 같았다. 오후 다섯 시 밖에 안 되었지만 일찍 출발해서 역에서 대기할 요량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다시 이동했다.

Stephen J.Page, 9 11 79 ~ 9 17 2015
누군진 모르겠지만 추모하는 뜻으로 만든 가로등이겠지.



이 지역 버스 정류장 표지판은 대부분 저렇게 작다. NFTA-METRA라고 적혀 있고, 아래는 몇 번 버스가 정차하는가 적혀있는 식이다. 저 사이트에 들어가거나 어플을 다운받으면 버스가 언제 오는지 조회할 수는 있다. 꽤 잘 들어맞아서 희망고문을 덜게 해준다 -_-;
세븐일레븐 근처 40번 버스를 타고 57분, 버팔로 시내에 있는 종점에 내려서 6번 버스를 타고 26분, 또 내리면 Thruway Mall라는 곳이다. 여기서 46번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다가 HSBC 근처에 내려서 10분 정도 걸으면 최종적으로 데퓨 역으로 돌아갈 수 있다. 소요 시간 장장 2시간 반 -_-
저 마지막 46번 버스가 드럽게 오질 않아서 이 주변에 있는 몰들 구경을 했다. 더 홈 디팟(The Home Depot)이라는 코스트코 뺨치게 큰데 홈케어, 가전, 정원 가꾸는 물품 일체를 다 파는 마트가 있었다. 이케아가 우습게 여겨질 정도로 컸는데, 규모가 어느 정도였냐면 아예 집을 지을 수 있게 거대한 목재를 종류별로 쌓아놓고 파는 스케일이다 -_-;;;;;;; 화분 관련된 용품들이 꽤 탐났지만 난 가련한 뚜벅이였으므로 미련없이 나왔다.

Twizzlers twists Strawberry
스루웨이 몰 슈퍼마켓에서 득템한 것. 시카고 시내에서 어떤 훈녀가 아주 맛있게 먹길래 큰 기대를 품고 샀는데, 썩은 고무 맛이 났다^^ 진짜 요만큼도 맛이 없었다. 서너개 억지로 먹다가 기차에서 쿨하게 버렸다
밤 9시쯤 기차역에 도착해서 장장 3시간을 기다렸다. 내가 도착하고서 얼마 있지 않아 비가 내렸다. 일찍 오지 않았더라면 비를 맞으면서 걸을 뻔했다. 뉴욕에서 출발하는 이 기차는 약 30분 가량 연착이 되었고, 난 기차역 화장실에서 세안과 양치를 하면서 아예 수면바지도 가져올 걸 그랬나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땐 그 정도 연착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몰랐는데...

나이아가라도 안녕. 다음엔 혼자가 아니길, 이거보단 더 럭셔리하게-_-;;;;; 다닐 수 있길.

하루 종일 걷느라 피곤했던 난 불편한지도 모르고 푹 잤다. 시카고 도착 예정 시각은 다음날 오전 9시 46분이었다. 30분 연착돼서 왔으니 넉넉잡아 10시 반이면 도착하겠지? 그러나 아침에 승무원이 어젠 없었던 서비스인 물과 한 꾸러미의 과자를 제공하고 난 영문도 모른 채 맛있다며 열심히 먹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