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_01 20170405
혼자 다녀온 미국.
흔히들 다녀오는 관광지인 뉴욕도 아니었고, 일말의 연고도 없었고, 영어 실력도 심각한 수준인 내가 용기를 냈던 건 덕심 반, 도전의식 반.
퇴사 후 어느 정도 재정적+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그렇게 비싸지 않은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수요일 출발, 나리타 경유 JAL, 라운드 티켓 총 71만원대. 일단 항공권을 지르고 나니 모든게 일사천리였다. ESTA 결제하고, 에어비앤비로 8일짜리 숙박 예약하고, 여행북 사고, 시티패스 지르고, 스텁헙으로 컵스 야구 티켓 사고, 환전하고, 계획표 짜고 등등. 3개월 금방이었다.
오전 여섯시, 김해국제공항 할리스. 크로와상 샌드위치&콜드브루 총 8,400원.
그 전날 한숨도 못 자고 그대로 밤을 샜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긴장했기 때문이다. 혼자이고, 나리타 공항이 처음이고, 비행기 경유가 처음인데, 경유 시간이 50분 밖에 되지 않았다. 실수하면 어쩌나 걱정 잔뜩인 와중에 요 아침밥도 억지로 먹은 것.
JAL 탑승.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는 40분이면 가는데, 도쿄까지는 거의 2시간이 걸린다. 기내식을 주는게 어쩌면 당연. 우왕 뭐가 들었을까?
크로와상 샌드위치 -_-;;;;;;;;;;;;;;;;;;;;;;;;;;;;
KAL에서 주던 것보다 더 맛있었던건 함정. 성의 자체가 다르지 않은가, 댄에서는 걍 랩에 싸서 주는데 여긴 나름 상자에 담아 주고, 식기도구도 같이 준다고.
이해할 수 없는 맛의 라이스 크래커 스낵.
맥주 안주를 줄 거면 맥주도 함께 주세요 !!!
다행히 생각보다 환승이 빡세진 않았다.
20분 만에 62번 게이트로 이동.
BLUE SKY 면세점에서 귀여운 마그넷도 사고
이코노미 탑승.
23열이었는데, 통로 쪽 앞좌석을 줘서 열두 시간 동안 다리 쭉 뻗고 갔다. 아이 좋아. 장시간 비행이라 그런지 담요, 목베개 등 전좌석 기본 제공이다. 양치는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화장실 안에 아예 일회용 칫솔&치약이 제공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편했다.
지루한 비행 끝에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 도착.
미국은 입국 심사가 빡세기로 유명한 나라라고 들었다. 그래서 어떤 것을 물어보는지, 뭐라고 대답해야 되는지 사전에 열심히 검색했었는데 막상 이 줄에 서고 나니 머리 속이 새하얘졌다. 영어 사용의 두려움을 여기서 처음 느낀 것이다.
하지만 반전 -_-
어디로 가냐? 시카고.
뭐 때문에 왔어? 관광.
며칠 있을 거야? 10일.
딱 세 가지 물어보고, 여권 대조 후 지문 프린팅 하고, 바로 통과. 뭐야. 나 왜 긴장했어? 나중에 들었는데, 이 입국 심사란 게 요즘 한중일 관광객들에게는 굉장히 관대하다고 한다. 게다가 내가 운이 좀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한게, 작년에 뉴욕 다녀온 친구도 JFK로 입국 시 질문을 열 개 가량 받았다고 했다. 내가 유독 질문이 적은 분께 심사를 받은 듯.
어찌저찌 입국 후, 공항에서 날 기다리던 퍼비언과 제니를 만나 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추웠다. Addison 역 근처에 잡은 숙소에 캐리어를 보관하고, 식사하러 이동.
고마운 나의 친구들, Jenny&Favian.
첫 식사를 하러 온 곳은 Piece Brewery&Pizzeria 라는 곳이다.
시카고 피자 하면 우린 흔히 딥디쉬만을 떠올리지만, 사실은 굉장히 많은 종류의 피자를 선택할 수 있다. 도우는 물론, 40여가지의 야채&고기 중 몇 가지를 선택해 커스텀 피자를 주문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은 커스텀을 사랑하는 나라. 그리고 비주얼만 보자면 우리 나라에서 먹던 화덕 피자랑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지만, 한 입 베어물어 보면 토마토 페이스트부터가 얼마나 다른지 확 느낄 수 있다. 게다가 가격도 한국보다 저렴하다는거.
웰컴 드링크(?)
Hitachino Nest White Ale / 히타치노 네스트 화이트 에일. 부담 없이 부드러운 맛. 지금 보니 일본 맥주 같은데...
런치 메뉴로 주문. 사람이 셋, 피자도 세 판.
한 판에 약 8불 정도. 페퍼로니가 제일 맛있었다
즐거운 첫 식사를 끝내고, 퍼비언네 부부랑은 주중에 또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이제 스스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차례. 레드 라인 Addison 역에서 33불에 CTA패스 7일권을 구매했다. 보증금 5불이 포함된 가격이며,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7일권 소진 후에는 5불치를 교통 카드로써 이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L이라고 부르는 시내 지하철과, CTA버스 무제한 사용 가능. 여행 내내 진짜 편하게 사용했다.
지하철 시설 낡음으로는 거의 전세계 탑급 수준이라고 하는 L 트레인. 전 역사 내 화장실, 스크린도어 따위 없다. 가끔 플랫폼에서 흡연하는 정신나간 인간들도 볼 수 있다.
오후에 모 카페에서 알게된 동행 K양을 만났다. 이날 내 계획은 머천다이즈 마트에서 약 두 시간 정도 관광하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봤을 때도 그렇고, 실제로도 건물이 어마무시하게 컸기 때문에 분명 그 정도 볼거리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20분 가량 둘러보고 나니 끝. 첫 계획부터 틀어졌지, 날씨는 구리지, 살짝 너갱이(?)가 나간 상태로 일단 밀레니엄 파크에 가 보기로 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더 운치(?)는 있었다. 사람도 거의 없고.
시카고에게 4월이란? 아직 겨울이다. 핸드메이드 코트를 입었는데도 춥게 느껴졌던 날씨. 지하철 내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패딩-_-;;;;;;;을 입고 다니더라는. 어쨌든 이 도시의 상징인 클라우드 게이트 aka 자이언트 빈, 콩 앞에서 사진 촬영. 여행 첫 번째 미션 달성이다.
크고 아름다워...
거리가 정말 아름다웠다. 춥고 피곤했지만 이 때부터 여행 기분에 푹 취했었지.
이른 저녁을 먹으러 Vapiano 방문.
요즘은 서울에서도 이런 형태의 식당이 종종 있는 듯 하다. 입장하면 카드를 주는데, 피자&리조또&파스타 등 조리 줄에 서서 카드를 이용해 주문하고, 나갈 때 카드 반납하면서 계산하는 식. 소스와 면 종류, 치즈를 뿌릴지 등등 여러 가지를 직접 조리사에게 주문할 수 있다. 익숙해지면 너무나 세심하고 좋은 형태의 레스토랑인데, 나처럼 영어울렁증+세세하게 주문하기 귀찮음인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곳.
포모도로 9.95불, 스프라이트 병 2.95불, 택스 포함 총 14.56불.
미국에서의 외식이 어떤 것인지 딱 느끼게 해준 끼니였다. 다소 비싼 가격에 양이 많고, 충격적으로 짰다. 반도 못 먹고 버려야만 했다. 치즈를 뿌리지 않았더라면 좀 더 나았을까?
첫 날이니 저녁에 좀 일찍 쉬기로 하고, 숙소로 귀가.
그리고 나는 저 블라인드와 3일에 걸친 사투를 벌이게 되는데...